평양서도 박근혜 탄핵·한국 대선은 큰 관심사
2017-04-13 오전 8:55 ikoreatimes 조회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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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두 얼굴의 도시’ 평양 취재기
평양 도착하자마자 민화협 소속 관계자 1:1로 따라 붙어
일반 시민 접촉 극도로 경계, 도로도 정해진 루트만 다녀
기자 눈에 비친 평양 시민은 비교적 안정적 삶 누리는 듯
박 전 대통령 탄핵·구속, 국내 대선 관련 상황 관심 많아
극히 제한된 소수만 카카오톡·페이스북, 구글 등 사용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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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순안국제공항. 


평양은 가깝고도 먼 곳이다. 서울과 평양의 직선거리는 200km가 채 안 된다. 하지만 2018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 취재를 위해 평양으로 출발한 한국 공동취재단은 2일 출국한 지 약 30시간 만에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육로가 막혀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6일 간의 체류를 마치고 돌아올 때도 애를 먹었다. 8일 오전 11시 20분 출발예정이던 평양발 선양(중국)행 비행기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오후 4시 30분으로 이륙이 연기됐다. 결국 오후 5시 30분에야 이륙했고 예정보다 하루 늦은 9일 입국했다. 취재단은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모든 대회 일정을 마치고, 한국 선수단이 돌아온 13일 새벽 이후 기사를 송고하기로 했다.

두 얼굴의 도시, 평양

평양에 도착하자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소속 관계자들이 일대일로 따라붙었다. 민화협은 남북교류가 한창일 때 회담이나 민간 교류 시 한국 인사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기사를 송고할 때도 이들이 늘 먼저 확인했고 일반 시민들과 접촉을 극도로 경계했다.

평양은 ‘두 얼굴의 도시’였다.

취재단이 묵은 양각도 호텔(47층), 조만간 완공 예정인 105층 류경호텔 등 다양한 높이의 건물이 즐비했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많지 않았고, 쓰레기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서울과 달리 상업광고판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대신 ‘일심단결’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 장군님의 자랑스런 아들딸이 되자’ 등 선전 문구로 가득했다. 의외로 김정은에 대한 찬양문구는 거의 없었다. 민화협 관계자들은 군인을 촬영하려 하면 민감하게 반응했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찍으려고 하자 “초상이 나무에 가리면 안 된다” “정면으로 찍어야 한다”고 토를 달았다. 평양에서는 어디서나 흡연이 가능했는데 김부자 초상화 앞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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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시민들이 김일성 경기장 앞 공원에서 봄을 즐기고 있다. 어린이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이채롭다.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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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동강 양각도 호텔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 안개에 싸인 주체사상탑.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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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양 미래과학자 거리에 위치한 아파트 모습.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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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시내 전우역 주변 모습.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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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동강 양각도 호텔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 김책공업종합대학 앞 도로와 대동강변에 평양 시민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평양


화려한 평양 거리는 해가 지면 깊은 어둠에 잠겼다. 대동강변 고층건물에 불빛은 없고 차량도 안 보였다. 멀리 보이는 주체사상탑과 건너면 김책공대의 건물에 걸린 김부자 초상화에만 늘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북한은 한정된 풍경만 보여주기 위해 정해진 루트로만 다녔는데 어쩔 수 없이 노출된 모습은 평양 시내와 순안공항을 오가는 거리였다. 공항 주변은 한국의 1960년대 같았다. 나물을 뜯는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보였고 도로는 정비되지 않아 버스가 덜컹거렸다. 촬영하려고 하면 “선생, 어디에 쓰려고 그럽니까”라며 민화협 관계자들이 제지했다.

평양 시민들은 식량난 등 열악한 사정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이곳에 주로 모여 사는 수뇌부들은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평양 카르텔’이라는 말이 새삼 와 닿았다.

차기 대통령은 누구?

북한 관계자들은 한국의 정치 상황을 끊임없이 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지칭하며 “최근 우리 민족의 수치가 있었다” “박근혜가 세월호 때 주사를 맞은 게 사실입니까” “이번 일에 기자 선생들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연신 질문을 해댔다. “안철수 선생이 문재인 선생을 많이 따라잡은 것 같다”며 대선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취재단이 “북측 분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다”며 슬쩍 넘어가려 하면 “어떻게 기자 선생들이 우리보다 모를 수 있습니까”라고 웃기도 했다.

그들의 생활은…

북한 사람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평양에서 만난 이들은 학창시절 혹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얻은 직업을 계속해서 했다. 취재단이 손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식당의 봉사원(종업원)들도 그랬다. 유명 음식점인 옥류관의 대표 요리 평양냉면과 그에 곁들여 나온 녹두전은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비결을 묻자 봉사원은 “30년 동안 녹두전만 만든 료리사의 손맛”이라고 했다. 김일성경기장 앞 개선문에는 35년 동안 가이드를 맡은 중년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김일성의 70번째 생일(4월15일)에 맞춰 건립된 개선문에 새겨진 문양의 의미와 숫자의 의미를 능수능란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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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관의 봉사원의 모습.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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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완연한 봄 날씨에 밝고 화사한 옷을 입은 여성들. 평양


달러, 위안화, 유로 등이 두루 사용됐지만 북한 돈은 구경도 못했다. ‘나래카드’라는 일종의 선불식 충전 카드가 있는데 충전을 하면 잔돈 대신 껌으로 거슬러줬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구글 등 인터넷 접속은 자유로웠다. 랜선을 통한 광대역 연결 방식이었는데 따로 아이디를 발급받아야만 했다. 인터넷 자체를 막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디를 받은 극히 제한된 소수에게만 접속의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취재단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휴대폰을 모두 맡기고 와서 전화 가능 여부, 로밍 등은 알아볼 길이 없었다. 북한 관계자들은 모두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고 거리에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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