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사랑한 제주 ‘안덕계곡’】
2015-10-13 오전 10:14 Korea Times 조회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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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 기암절벽… 명품 숲…“여기가 제주 1경”



▲ 제주의 짙은 숲속 계곡 전체는 기암절벽으로 어우러져 있어 어두컴컴하지만 하늘에서 비춰지는 햇빛의 빛 줄기에 신령스러운 풍경이 숨어 있다.

▲ 안덕계곡 일대는 난대림 식생으로 300여종에 달하는 활엽수들과 양치식물들로 덮여 있다.

계곡 초입서 200m 정도 들어가면 선사시대 동굴
후박나무·조록나무·가시나무 등 천연기념물 지정


“나에게 제주에서 가장 좋은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계곡을 추천하고 싶다. 제주에는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계곡들이 많다. 특히 해안가에서 시작해서 한라산 정상 방향으로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정말 아름다운 곳이 많다."

‘소나무'의 사진작가 배병우씨가 들려준 이야기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시작해 계곡을 타고 한라산 쪽으로 올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길도불편하거니와 제주도의 기후 특성상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비라도 만나는 날에는 계곡물이 급류로 돌변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제주에 온 김에 배씨의 말이 생각 나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가까운 안덕계곡(安德溪谷)을 찾아보기로 했다. 안덕계곡은 대로변에 접해 있어 접근이 용이한데다 코스도 평탄하고 한 시간 남짓이면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안덕계곡은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서 동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일주도로변에 있다. 중문에서 출발하는 경우에는 12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남쪽으로 41번 지방도로와 만나는 갈림길이 나온다. 바로 그 옆을 흐르는 하천이 장고천이고 이 계곡을 안덕계곡이라고 부른다. 길가에 이정표와 주차장이 있어 이곳에 차를 세우고 트래킹을 시작하면 된다.

안덕계곡은 마그마가 지상으로 나오면서 표면이 거칠게 굳어진 조면암으로 형성된 계곡인데 깊게 팬 계곡의 암반 위로 물이 흐르고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계곡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과 우거진 활엽수림이 햇빛을 가려 대낮에도 어두컴컴하다. 계곡 초입에서 200m쯤 들어가면 선사시대 주거지로 쓰였던 야트막한 동굴도 볼 수 있다.

화산암이 많은 제주도의 계곡들은 물을 잘 투과시켜 평소에는 말라붙은 건천이 대부분이지만 안덕계곡에는 맑은 물이 항상 흐르고 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안덕계곡은 흙 위로 물이 흐르는 게 아니라 암반 위를 흐르기 때문에 제주의 다른 하천과는 달리 항상 일정한 수량을 유지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가까운 대정에서 유배살이를 했던추사 김정희는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자주 찾아와 풍경을 즐겼다.

게다가 이 지역은 후박나무·조록나무·가시나무·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참식나무 등으로 이뤄진 난대림이 천연기념물(제377호)로 지정됐을 정도로 우거져 있어 나뭇잎들이 물 위로 쏟아지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안덕계곡을 흐르는 장고천은 군산(335m)이라는 측화산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군산은 정상 부근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는 제주에서 몇 안 되는 측화산 중 하나다. 군산 정상에서는 산방산·용머리·송학산·가파도·마라도 등을 한눈에 볼 수도 있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각양각색의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초입에는 조면암 바위들 사이로 계곡 물이 흐르고 있고 위쪽에는 바닥 전체가 용암으로 굳어져 형성된 계곡이 나타난다.

또 계곡 가운데에 기둥처럼 솟아오른 기암절벽이 있어 냇물이 양 갈래로 갈라져 흐르는 모습이 이채롭다.

입구에서 20분쯤 오르면 창천리부근에서 ‘유배길 3코스 사색의 길'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타고난 역마살에, 제주로 귀양 오는 복(?)까지 터진 추사 김정희(1786~1856)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이정표에는 추사는 물 좋은 창천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권진응을 부러워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유배가 끝날 무렵에는 물이 좋은 창천리로 한 번 더 옮긴 것으로 전한다. ‘다경’(茶經)에 이르기를 ‘산(山)물이 상등이고 강물은 하등이며 우물은 최하등'이라고 했다. 추사는 상등의 물을 구할 수 있는 창천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귄진응을 부러워했다"고 적혀 있다.

제주에 와서 차 끓일 물을 구하러 이사를 다닐 정도였으니 휴가를 왔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자신을 귀양 보낸 헌종에게 감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두운 숲 속에 갇혀 바깥 날씨를 모르다가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산은 없었고 배낭 안에 우의가 있었지만 습기 찬 날씨에 우의를 입으면 몸이 땀으로 젖을 것 같아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 비를 맞으며 내려오는 길에 ‘추사가 9년 만에 귀양에서 풀려 한양으로 불려 올라간 것을 보면 나중에는 헌종도 김정희의 표정관리(?)를 눈치챘던 것이 아닐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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